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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폴리머 원료의 역사 ②
작성자 플라스틱코리아
글정보
Date : 2021/03/29 17:26

폴리머 원료의 역사 ②

셀룰로이드의 발명은 소재 및 가공의 끊임 없는 혁신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Hyatt는 20세기 초까지 당구공 문제와 씨름을 계속 벌여 나갔다지만 상아의 완벽한 대체물 개발이라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이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낸 이는 Hyatt가 자신의 실험을 막 시작해 나갈 무렵 태어난 한 발명가였다.

 

19세기 중반에 살면서 소재분야 쪽 일을 하던 사람에게 당시는 그야말로 혁명적 발전의 시기였다. 불과

1년 뒤인 1846년, gutta-percha(구타페르카)는 지난 회에서 언급했듯 전신 와이어 절연소재 성형에 사용됐고, 빅토리아 여왕 마차에 사용하기 위한 고무 타이어에도 사용됐다. Alexander Parkes(알렉산더 파크스)가 실온에서 고무를 가황하는 기술을 발견하게 되면서 Hyatt(하얏트)가 찾던 새로운 당구공 소재로 결국 이어지게 되는 우연히 발견된 일이지만 주목할 만한 실험 또한 이 해에 시작됐다. 

이 실험은 스위스 바젤대학의 화학 교수 Christian Friedrich Schonbein(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쇤바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몇 년 전 오존을 발견했던 그는 질산과 황산을 혼합하면 뛰어난 산화제가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어느 날 부엌에서 이 산성 혼합물을 증류하는 과정에서, 그는 실수로 플라스크를 건드려 넘어뜨렸고 흘러나온 내용물을 손에 가장 가까이 있던 면 앞치마로 서둘러 닦아 정리했다.

그런데 이 젖은 앞치마를 뜨거운 난로 위에 매달아 놓고 말리려고 했을 때, 앞치마는 즉시 불길에 휩싸여 타서 사라져 버렸다. 면화약(guncotton-정제한 솜을 황산과 초산의 혼합액으로 처리해 만든 화약이다. 무연 화약의 원료가 되기도 한다)이라고도 하는 질산염 셀룰로오스(nitrated cellulose, 니트로셀룰로오스)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 변성 셀룰로오스를 활용하는 일련의 새로운 발명품이 뒤따랐다.

면화약 발견은 1840년대 군비경쟁 수준을 촉발시켰다. 특허들이 다수 출원되면서, 면허료 비용의 지불을 피하고자 하는 각국은 자신들이 그 발명을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하려고 시도했다. 실험 과정에서 사용되는 원료들의 극히 높은 휘발성으로 인해 1840년대 말 유럽과 러시아 전역에서 대형 사고가 빈발했고, 이는 마침내 추가 개발에 대한 금지와 더 이상의 실험에 대한 포기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 시기에 셀룰로오스 질산염을 가지고 실험하던 여러 발명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 에테르와 알코올의 혼합물에 용해되어, 후에 콜로디온(collodion)이라 이름 붙여진 물질을 형성하게 됨을 발견했다. 이 물질은 건조되면 단단하고 투명하게 되었고, 바니시나 래커, 방수코팅 또는 박막역할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이 물질은 성형가능한 고체물질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여러 면에서 고무나 구타페르카와 같은 기능을 보이지만 생산비용을 훨씬 낮출 수 있었다.

군비경쟁을 촉발시켰던 면화약의 발견

 

이미 저온 가황 가공을 개발한 바 있는 Alexander Parkes는 1856년 성형이 가능한 이 물질로 특허를 받았다. 이 소재는 Parkesine(파크신)이라는 이름으로 1862년 런던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공개됐다. 동메달을 획득한 이 소재는 여러가지 다양한 제품의 형태로 전시되어 참관객들에게 큰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이 소재를 사용해 만든 당구공도 선을 보였고, 1860년대 말에는 보다 널리 알려진 다른 제품들도 개발되어 나오게 된다. Alexander Parkes는 제품에 필요한 균형 잡힌 특성을 얻기 위해 다양한 야채에서 얻은 오일을 오늘날의 가소화제(plasticizer) 역할을 하는 물질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 소재의 생산 비용을 낮추겠다는 약속은 실현되지 못했다. 의약품 및 사진 등 다른 용도에도 사용되고 있던, 콜로디온(Collodion) 생산에 쓰인 용매들의 원가가 너무 비싸서 보다 경쟁력 있는 시장을 위한 성형가능 소재의 대량생산이 어려웠던 것이다.

소재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Parkes는 품질이 좋지 않은 면 폐기물을 사용해 셀룰로오스를 만들고 피마자 오일 가소제를 다량 첨가했다. 그 결과로 얻은 소재는 기계적 물성을 잃게 됐고, 이를 사용해 만든 제품들은 치수 안정성이 결여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제품은 높은 롯트 마다 품질이 매우 들쭉날쭉 했고 이 때문에 결국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하지만, 이 발명은 최초의 성형가능 플라스틱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결국 Hyatt의 셀룰로오스 발명으로 이어지게 되는 소재 개선의 길을 열었었다.

이 때는 지난 회 연재에서 언급한 마스터 당구의 고수 Michael Phelan(마이클 펠란)이 상아를 대체할 수 있는 적절한 소재로 만든 당구공에 10,000 달러의 상금을 제공했던 시기다. Phelan 자신 또한 고무로 만든 당구 테이블 쿠션 소재의 발명가였을 뿐 아니라, 당구 테이블을 제작하는 회사에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상아 공급의 어려움으로 당시 인기가 높은 오락거리였던 당구 붐이 위협을 받을 수 있음을 심각하게 인식했다.

인쇄업자였던 John Wesley Hyatt(존 웨슬리 하얏트)는 그가 내건 상금을 차지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이끌려 당구공을 만드는 다양한 방법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Hyatt는 처음에는 직물과 나무, 종이 조각들을 풀, 바니시, 셸락(shellacs) 및 기타 접착제를 사용해 결합한 소재로 새로운 당구공을 실험했다.

Hyatt는 1865년 린넨 천에 셸락과 상아나 뼈의 가루를 섞어 코팅한 뒤 이를 열과 압력을 가해 가공한 모조 상아 당구공으로 최초의 특허를 획득했다. 하지만 이 발명품은 상아의 적절한 대용품이 되지 못했다. Hyatt는 실험을 계속했고, 1868년 종이와 목재펄프를 셸락으로 합친 뒤 다시 열과 압력을 가한 소재로 두번째 특허를 획득했다.

Hyatt는 콜로디온이라는 물질에 친숙했을 것이다. 당시 외상상처 치료에 널리 사용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인쇄업계에서는 라인 작업자들이 손끝에 찰과상을 입지 않도록 보호하는 용도로 널리 쓰였다.

그리고 하나의 우연한 사고가 운 좋게 일어났다. Hyatt가 어느 날 병이 엎질러 흘러나온 콜로디온이 딱딱한 막이 형성된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공을 콜로디온에 담가 코팅해 새로운 버전의 당구공을 만들기 시작했다. Hyatt 또한 속이 꽉 찬 단단한 물질을 만드는 과정에서 Parkes를 괴롭혔던 것과 같은 문제에 마주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소재의 점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 끝에 마침내 높은 온도 및 압력을 가했을 때 목재 코어 주위를 감싸 성형할 수 있는 컴파운드 개발에 성공했다. 당구공을 만드는 이 개선된 기술은 1869년 4월 새로운 특허를 받는다.

Hyatt는 장뇌(camphor)를 가소화제로 사용해 셀룰로이드를 성형 가능한 물질로 만드는 비결을 발견했다.

이 발명은 나중에 셀룰로이드(Celluloid)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고, Hyatt가 상아의 대체물로 발명한 소재로 알려지게 된다. 사실 이 셀룰로이드라는 이름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난서야 붙여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셀룰로이드 당구공은 상용화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1만 달러 상금을 목적으로 Phelan의 회사에 보내진 적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Hyatt는 20세기 초까지 당구공 문제와 씨름을 계속 벌여 나갔다지만 상아의 완벽한 대체물 개발이라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이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낸 이는 Hyatt가 자신의 실험을 막 시작해 나갈 무렵 태어난 한 발명가였다. 그의 이력은 흥미롭게 Hyatt의 이력과 서로 만나게 된다.

Hyatt는 Parkes의 예전 특허 중 일부를 검토하다가 장뇌(camphor)를 가소화제로 사용해 셀룰로이드를 성형 가능한 물질로 만드는 비결을 발견했다. Parkes는 장뇌를 이용했지만 다른 용매와 연계해서만 사용했다. 장뇌에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높은 압력과 열을 이용하는 실험을 계속해 나간다. Hyatt는 Parkes의 콜로디온을 다양한 성능을 지닌 소재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혼합물에 첨가되는 장뇌의 양에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콜로디온의 물성을 고무 또는 구타페르카와 유사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Hyatt가 미국에서 당구공의 대체소재를 만들기 위한 실험에 열중하고 있을 때, 영국에서는 Alexander Parkes 밑에서 일했던 Daniel Spill(다니엘 스필)이라는 이가 실패한 Parkes의 회사를 인수해 성형가능한 물질을 만드는 데 장뇌의 중요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발명한 이 성형가능 소재를 Xylonite(자일로나이트)라 이름 붙였다.

이 유사 발명은 불가피하게 특허 분쟁으로 이어져, 1877년부터 1884년까지 법정 다툼을 벌였다. 결국에는 Spill의 발명과 Hyatt의 발명 모두 이 소재의 원래 발명가로 여겨지는 Parkes의 작업에서 유래한 것일 수 있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와 함께 셀룰로이드 제품의 일체 제조행위를 계속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다음 회 연재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그 사용이 확대되면서 또 다른 중요한 플라스틱 가공기술의 발명으로 이어지게 되는 셀룰로이드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살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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