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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폴리머 원료의 역사 ③
작성자 플라스틱코리아
글정보
Date : 2021/04/30 11:07

폴리머 원료의 역사 ③

셀룰로오스 기반의 원료는 폴리머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첫 번째 단계다.  최초의 진정한 열가소성플라스틱은 수은을 함유한 셀룰로오스 질산염(cellulose nitrate)을 기반으로 했다. 셀룰로오스 기반 원료는 자연 발생 화학물질을 교묘하게 조작해서 얻은 것이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합성 물질은 아니다.

John Wesley Hyatt(존 웨슬리 하얏트)의 성형가능 소재, 즉 최초의 진정한 열가소성플라스틱은 수은을 함유한 셀룰로오스 질산염(cellulose nitrate)을 기반으로 했다. 인화성이 있고 때로는 폭발성을 보일 수 있는 원료로 당구공 같은 응용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당구 게임에 수반되는 공에 가해지는 충격으로 마치 총을 발사하는 것과 비슷한 소리가 난다는 점은 모든 이들이 총을 지니고 있는 미국 서부의 살롱에서 당구를 치는 상황에서 결코 바람직한 특징이라 할 수 없었다. 소재의 기계적 물성을 조절하기 위해 용매로 주로 사용한 장뇌는 이 소재와 관련된 위험을 줄이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Hyatt와 그의 동생 Isaiah는 고무와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소재의 잠재력을 인식했다. 천연 고무를 용매에 최초로 녹여 방수 의류를 생산하는 데 사용했던 시점과 셀룰로이드가 발명된 시점 사이에서 50년 동안 고무는 호기심 대상에서 새로운 시장 개발의 길로 빠르게 움직여 나갔다.

1822년 고무에 대한 전 세계 수요는 31톤이었으나, 1870년에는 9천1백톤으로 성장했다. 이는 세기의 전환기에 자동차산업이 타이어에 고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일어날 일과 비교하면 미미했지만, 이 같은 수준 높은 초기 성장으로 고무 생산업체들의 조직을 탄생시켰고 이들은 서로 결탁해 고무원료 및 그로 만든 제품들에 대해 매우 높은 가격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

Hyatt가 발명한 가장 중요한 가공 방법은 틀니용 플레이트를 만들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장치

이 제품들 가운데 하나가 틀니 제작을 위한 치과용 플레이트다. Hyatt 형제는 플레이트 생산을 위해 고무를 사용하고 있던 회사들에게 셀룰로이드를 사용해 보도록 설득하고자 시도했다. 오늘날 우리는 고무와 플라스틱을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1870년대의 고무업계는 새로운 열가소성플라스틱을 자신들의 시장 지배력에 중대한 위협으로 여겼다.

치과 진료에 셀룰로이드를 도입하기 위해 Hyatt 형제는 고무회사들과 협력하기보다는 경쟁해야 했다. 셀룰로이드를 사용한 제품생산을 위해 Hyatt는 압축성형 및 램(ram) 압출을 포함해 원료 성형을 위한 여러 가지 가공방법을 발명해냈다.

그러나 Hyatt가 발명한 가장 중요한 가공 방법은 틀니용 플레이트를 만들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장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기계는 한쪽 끝이 테이퍼링 되면서 노즐을 이루는 실린더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실린더는 기름으로 채워져 가스로 가열하는 재킷으로 둘러싸여 있다. 실린더 반대쪽 끝에는 피스톤 그리고 레버로 회전시켜 가열된 노즐을 통해 용융된 원료를 밀어낼 수 있는 스크류가 장착되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사출성형기다.

고무 카르텔과 이제 막 태동한 열가소성플라스틱산업 간의 경쟁은 치과용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양쪽 소재 모두 지금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고무 틀니는 원료 경화에 사용된 황의 맛이 느껴졌고, 셀룰로이드는 점도와 기계적 물성 조절을 위해 첨가된 장뇌 맛이 났다. 셀룰로이드 측은 고무의 과점(寡占)을 깨고 가격을 대폭 낮추겠다는 약속을 내놓았다.

그러나 셀룰로이드는 뜨거운 음료를 마셔 입 안의 온도가 올라가면 변형이 발생되기 쉬웠고 이는 고무 업계 입장에서는 반가워 마지 않았던 뚜렷한 성능 상의 문제점이었다. 고무 시장이 이 새로운 소재에 의해 위협을 받는 것처럼 보일 때마다 고무 카르텔 측은 플라스틱 소재 인식에 대한 오늘날의 공포 전술을 떠올리게 하는 “셀룰로이드가 인체에 해롭다”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보는 플라스틱에 대한 부정적 선전과는 달리, 당시의 이 같은 공격은 폴리머산업 내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셀룰로이드가 직면하고 있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뉴욕의 일부 투자자들은 Hyatt가 자신의 공장을 올버니에서 뉴욕시 인근으로 옮기는 조건으로 제품개발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 새로운 공장은 1872년 뉴어크에 설립됐고 3년 뒤, 이 공장에 화재가 발생해 단 몇 시간 만에 완전히 잿더미가 되면서 셀룰로이드의 강력한 휘발성은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러한 좌절과 고무업계의 부정적 홍보작전에도 불구하고, 셀룰로이드는 장신구 또는 빗이나 브러쉬 손잡이 같은 개인 소장용품에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뼈, 대리석, 거북이 등껍질, 뿔, 상아 등을 대체하는 소재 시장을 발견했다. 셔츠의 칼라 및 커프스 용 소재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원료의 성형성 덕분에 직물을 흰색 폴리머 표면 위에 압착시켜 직물의 패턴을 복제할 수 있었다. 그런 다음 이를 이용해 실제 린넨 칼라 및 커프스의 저렴한 대체품을 성형해 낼 수 있었다. 물론 이를 두고 고무업계가 불에 너무 가까이 가거나 불붙은 담배나 시가에 셔츠 커프스가 닿아 끔찍한 사고를 당한 사람들에 관한 사실 같지 않지만 실제 있었을지도 모를 이야기들을 퍼뜨렸음은 말할 것도 없다.

얇은 필라멘트로 성형한 니트로셀룰로오스로 만든 직물 레이온은, 이런 초창기 폴리머를 의류 용품에 사용했을 경우, 위험성이 크게 강조되던 19세기 말에 탄생한 또 하나의 발명품이다. 원래 레이온은 인화성이 매우 높아서 냉소적인 유머로 정치적으로 다소 부적절한 “시어머니용 실크(mother-in-low silk)”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레이온이라는 이름은 오늘날에도 계속 사용되고 있으며, 이 소재는 여전히 셀룰로오스를 기반으로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가공되어 더 이상 인화성을 띄지 않는다.

셀룰로오스 질산염을 기반으로 한 화학물질의 유용성과 휘발성 사이의 충돌은 다른 형태를 취했다. 에테르와 알코올에 용해된 형태의 셀룰로오스 질산염인 콜로디온(collodion)의 초창기 용도 가운데 하나는 유리 사진판 보호를 위한 필름이었다.

Alexander Parkes(알렉산더 파크스)는 유리판 없이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자립적 구조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이후 4년 동안 일련의 개발작업을 거쳐, 콜로디온을 기반으로 필요한 기계적 물성을 갖춘 지지 유리판이 필요 없는 자립형 필름을 생산할 수 있는 화학적 원리를 George Eastman(조지 이스트만)과 그의 동료들이 Hyatt의 회사인 Celluloid Company(셀룰로이드 컴퍼니)로부터 유래한 화학기술을 활용해 개발해냈다.

물론, 이런 역사들은 결코 보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 Eastman은 1889년 3월 유연한 형태의 필름에 대한 특허를 신청하고 그로부터 한 달 후 특허를 획득했다. 그러나 1887년, 화학에 대한 학문적 훈련이나 교육을 받지 않은 Hannibal Goodwin(한니발 굿윈)이라는 성공회 사제가 뉴저지 주 뉴어크에 자리한 자신의 교회에서 종교적 주제에 관해 자신이 정기적으로 진행하던 강연에 사용하던 유리 슬라이드 교체를 위해 교회에 이웃한 Celluloid Company에 도움을 청했다.

이 신부의 노력으로 셀룰로이드로 만든 꽤 쓸 만한 필름이 탄생했고 그는 Eastman이 특허를 출원하기 2년 앞서 특허를 출원했다. 그러나,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려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특허는 1898년까지 주어지지 않았다.

이는 불가피하게 법적 소송을 일으켰다. Goodwin 신부는 Eastman의 Eastman Kodak(이스트만 코닥)이 거의 10년 동안 필름을 판매해 얻은 수익의 일부를 달라고 고소했다. 필름의 특허 획득 전에는 별 것이 없었던 Eastman은 이 즈음에는 꽤나 큰 경제적 자산을 축적한 상태였고, 그는 1914년까지 이 소송을 법정에 묶어 두고 시간을 끌었다.

그러는 사이, Goodwin은 자신이 설립한 회사인 Goodwin Film and Camera Company(굿윈 필름 앤 카메라 컴퍼니)를 매각했고, 1900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소송은 Goodwin에게 유리한 판결로 끝이 났고, 그의 상속인과 그가 특허권을 매각한 회사가 그 수혜자가 됐다. 

영사기에 걸린 필름에 불을 붙이는 일이 자주 발생해 영화관의 초창기 시절은 빈번한 화재로 얼룩졌다.

19세기 말에 가서야 셀룰로이드 필름은 Thomas Edison(토마스 에디슨) 등에 의해 활동 사진용 소재로 채택됐다. 셀룰로오스 질산염의 인화성이 다시 한 번 분명이 드러났다. 밝은 빛을 내는 뜨거운 영사기가 영사기에 걸린 필름에 불을 붙이는 일이 자주 발생해 영화관의 초창기 시절은 빈번한 화재로 얼룩졌다. 초기 극장은 자주 불길에 휩싸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극장의 화재나 그로 인해 야기된 공황의 와중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1919년 미국의 대법관 Oliver Wendell Holmes, Jr.(올리버 웬들 홈스 주니어)가 당시 1차 세계 대전 징집에 반대하는 전단을 배포하는 시도가 언론의 자유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며 사람 많은 “극장에서 거짓으로 ‘불이야!’를 외쳐 공황을 야기하는 것”에 비유한 것을 보면, 당시 자주 발생하고 있던 극장 화재가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 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셀룰로오스 기반의 원료는 폴리머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첫 번째 단계다. 본 연재 후반에서 이 부분을 다시 다뤄볼 예정이다. 셀룰로오스 기반 원료는 자연 발생 화학물질을 교묘하게 조작해서 얻은 것이긴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합성 물질은 아니다. 다음 컬럼에서는 순수한 의미의 합성 물질 발전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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