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강좌
 
홈으로로그인회원가입사이트맵이메일
 
HOME 기술강좌 원료
전시회 일정
국내전시일정
해외전시일정(상반기)
해외전시일정(하반기)
관련링크
관련협회
연구소
관련도서
관련 채용정보

Since 1991

제목 폴리머 원료의 역사 ④
작성자 플라스틱코리아
글정보
Date : 2021/06/03 18:07

폴리머 원료의 역사 ④

이번 컬럼에서는 오늘날 페놀릭 수지로 알려진 최초의 진정한 의미의 합성 폴리머인 베이크라이트(Bakelite)의 발견에 대해 살펴보자.

 

1863년, 니트로셀룰로오스에 기반한 플라스틱 파크신(Parkesine)이 런던 만국박람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이듬해, Leo Baekeland(레오 베이클랜드)가 벨기에에서 태어났다. 문맹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Baekeland는 독일 본 대학교에서 Friedrich August Kekule(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 케쿨레)의 수석 조수였던 Theodore Swarts(테오도레 스바르츠) 밑에서 공부하고 21세 나이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Kekule는 폴리머 화학의 많은 부분에 있어 중심적 위치를 지니고 있으며, 최초 진정한 합성 폴리머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화학물질 가운데 하나인 페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화학물질인 벤젠 구조를 규명해 낸 업적으로 유명하다.

Baekeland는 사진 애호가이기도 했으며,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에는 유럽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사진용 건판 생산 공장을 설립한 현지 화학자와 함께 일하기도 했다. 초기 건판은 불쾌한 냄새 때문에 상당히 불편한 화학적 현상물질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Baekeland는 이점을 인식하고 박사 학위 취득 직후 물에 담그면 현상물질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수용성 감광유제로 코팅된 건판을 발명했다. 1887년 그는 이 발명으로 특허를 획득했다.  

1889년 Baekeland와 그의 아내는 사진용 필름, 인화지, 카메라 등을 만드는 회사를 이끌고 있던 Richard Anthony(리처드 앤서니)를 만나 뉴욕으로 갔다. 이 회사는 10년 뒤 Hannibla Goodwin(한니발 굿윈)으로부터 Goodwin Camera and Film Company를 사들인 바로 그 회사였다. Goodwin은 George Eastman(죠지 이스트만, Eastman Kodak의 설립자)보다 2년 앞서 셀룰로이드 필름을 개발했지만, 그의 발명에 대한 특허 발급이 11년 동안이나 지연되었으며, 그로 인해 지난달 컬럼에서 언급한 긴 소송전이 벌어졌다.

Baekeland는 Richard Anthony의 회사에서 2년간 일했고, 병을 앓은 뒤 독립 컨설턴트로 생계를 꾸리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면서 인화 크기 확대를 위한 사진 용지 개발에 주력했다. 사진의 역사 초기에, 인화는 태양이 제공하는 자연광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2년간의 연구 끝에 나온 Baekeland의 획기적 발명으로 인공 조명으로 현상할 수 있을 만큼 민감도가 뛰어나 햇빛이 필요 없는 콜로이드 상태의 은염화물 감광유제를 바른 종이가 만들어졌다. 그는 이 제품을 Velox(벨록스)라 이름 붙인다. 

이 시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공 조명이란 가스등을 의미했다. 그러나 셀룰로이드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했던 Edison의 전기조명 도입이 곧 이를 바꾸었다. 전문 사진가들은 이 새로운 인화지를 널리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 큰 인기를 얻어, 다름 아닌 George Eastman의 관심을 끌게 될 만큼 큰 시장을 형성했다. 1898년, Eastman은 Baekeland가 두 명의 파트너와 함께 설립한 회사를 75만 달러에 인수했다. 이 액수는 현재의 달러 가치로 약 2200만 달러에 달한다.

화학 및 에너지산업의 다른 주요 인물들과 이 모든 교차점은 Baekeland가 확보한 상당한 재정적 안정성 덕분에 전념하게 된 새로운 연구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Baekeland가 Eastman에 자신의 회사를 매각한 조건에는 이후 20년 동안 사진에 대한 연구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는 경쟁금지 계약이 포함되어 있었다.

화학에 대한 지식, 실험을 수행하는 재능,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찾아내는 뛰어난 본능, 생계를 위해 일할 필요가 없는 재정적 안정 등을 바탕으로 Baekeland는 뉴욕 주 Yonkers에 대규모 사유지를 확보하고, 셀룰로이드의 개발로 이어졌던 것과 유사한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착수했다. 셀룰로이드는 상아의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됐다. 19세기의 마지막 2년 동안 그리고 20세기 초로 이어진 전기산업의 급속한 확대는 다른 자연발생 소재, 셸락(shellac) 수지 공급의 병목 현상을 새로 초래하게 된다.

셸락은 깍지벌레가 나무에서 수액을 빨아먹고 수지를 분비해 만들어진다. 이것을 나무에서 긁어내어 순수한 화합물을 얻기 위해 가열 및 여과처리 한다. 100,000마리 이상의 깍지벌레가 있어야 셸락 1킬로그램가량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기가 도입되기 전의 시대에는 전통적인 낮은 셸락 생산 속도로도 래커 및 목재 제품 방부제를 만들기 위한 수요를 충족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전기산업은 우수한 전기 절연 특성과 습기를 막는 밀폐 능력을 지닌 셸락에 대한 엄청난 수요를 창출했다. 셸락이 축음기 레코드를 만들기에 적합한 소재로 선택되면서는 그 수요가 훨씬 더 커졌다. 이 대목은 Edison의 세계와 만나는 또 다른 교차점이 된다. (Edison은 1877년 축음기를 발명했다.) 1940년대에 이르면 이 용도에서 PVC는 셸락을 대체하게 된다.

셸락산업의 역사는 고무산업의 역사와 매우 흡사하다. 소량으로만 얻을 수 있고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발견되는 천연 폴리머라는 점은, 그 원산지에서 멀리 떨어진 유럽과 북미에서 진행되고 있던 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주요한 제약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천연 고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셸락은 산업이 바라는 성능 상의 일부 특성이 부족했다.

첫째, 이 물질은 약 75°C의 융점을 가진 열가소성 소재다. 그래서, 이 물질은 그리 높지 않은 온도에서도 부드럽게 된다.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를 생성하는 고전압 절연체로 셸락을 사용하면 녹아버리게 된다. 그리고 톱밥 같은 충전재와 혼합해 성형가능한 컴파운드를 만들 수 있지만, 그것은 상대적으로 낮은 표면 경도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제품에 응용하는 데는 노동력이 많이 들었다.

Baekeland의 5년간 연구는 1907년 “페놀과 포름알데히드의 불용성 응축 제품 제조방법 개선”에 대한 특허 획득이라는 결실을 거두었다. Baekeland는 이 제품에 지금도 플라스틱 업계 문헌에 이따금씩 등장하는 이름인 Bakelite(베이크라이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1983년 영국 서머싯에서는 Bakelite로 만든 제품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베이클라이트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비록 지금은 문을 닫고, 새로운 장소를 찾고 있지만, 웹사이트는 여전히 존재한다. Baekeland가 수지 생산을 위해 설계한 반응장치는  베이크라이저(Bakelizer)로 이름 붙여졌다.

오늘날 이 소재는 더 널리 사용되는 명칭, 페놀릭(phenolic)으로 알려져 있다. 특허 제목이 나타내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소재는 응축 폴리머이며, 이 화학 반응의 특성은 이 물질을 만드는 데 많은 어려움을 야기했다. 하지만 그 결과로 나온 물질은 최초의 진정한 합성 폴리머로, 천연물질을 개질해 만든 제품에 의존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가황 고무와 같은 열경화성 폴리머였지만 유황이 들어가지 않았으며, 그보다 훨씬 우수한 강도와 강성, 내열성 및 장기 내구성을 보였다. 이 소재는 운모 또는 자기보다 더 우수한 전기 저항을 가진 전기 절연체로 곧바로 받아들여졌으며, 셸락보다 내열성이 뛰어났고, 유리나 세라믹보다 내충격성이 더 높고, 광범위한 산성 물질, 알코올, 그리스 및 오일 등에 대해 우수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셀룰로이드와 놀라운 교차점을 이루어, 페놀릭은 우리가 오늘날 점탄성 특성이라고 부르는, 상아의 그것과 유사한 물성을 가지고 있음이 발견되어 당구공의 이상적 소재가 됐다. 이로써 John Wesley Hyatt(존 웨슬리 하얏트)가 내건 상아를 합성 물질로 대체하는 목표가 달성된 것이다. Hyatt는 1868년 당구공 회사를 창립하여 계속 운영해 오면서 셀룰로이드 기반 제형에 점진적 개선을 가해 왔다. 그러나 1912년, 그는 이 소재의 뛰어난 성능을 인정해 당구공 소재를 페놀릭으로 바꾸었다.

Baekeland는 페놀릭의 상업적 발전을 가능케 한 특허를 획득했지만, 이 화합물의 프로토타입을 만든 화학적 반응이 실제로는 30년 앞서 발견됐다. 일련의 막다른 지점과 운 좋은 사고를 통해, 포름알데히드와 기타 유기 화합물 간의 반응을 활용해 유용한 열경화성 물질을 생산하는 화학적 원리는 여러 재능있는 화학자 및 발명가들의 노력을 통해 진화했다. 그리고 발명 후에는 상용화의 어려움 그리고 피하기 힘든 소송이 뒤따랐다. 다음 번 컬럼에서 이야기의 이 부분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다. 

작성자   비밀번호
20298   폴리머 원료의 역사 ③ 플라스틱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