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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폴리머 원료의 역사 ⑤
작성자 플라스틱코리아
글정보
Date : 2021/07/05 15:05

폴리머 원료의 역사 ⑤

페놀릭(phenolic) 발명의 탄생은 여러 가지 사건 및 기여자들이 복잡하게 얽힌 긴 사슬을 따라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우레아와 멜라닌을 포함한 포름알데히드와의 교차결합에 기반한 다른 화학물질을 낳았다. 이 소재들은 전류 트래킹(tracking)에 대한 내성도 더 우수하다.

 

기술 개발의 역사를 살펴보면 아무 것도 없는 진공상태에서 획기적 발전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양한 기여자들이 작은 걸음들을 내딛고, 이것을 또 다른 이들이 더욱 진전시켰다. 이 모든 것이 한데 모여 페놀릭 발명이라는 최종 형태로 탄생하게 되고, 이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얽힌 긴 사슬을 따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아이디어를 갖게 되지만,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추어 그 발전을 기술적으로 실현가능하고 경제적으로 현실성 있도록 만들어 최초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사람만을 역사는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Leo Baekeland(레오 베이클랜드)가 훗날 페놀릭이 될 화학물질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도 전에, 영국에서 Arthur Smith가1899년 특허를 획득했다. 유용한 페놀릭 생산을 위한 시도에 부여된 최초의 특허였다. 그러나 이 페놀릭은 90~100°C 온도에서 며칠 간 경화를 필요로 했다. 그 과정에서 변형이 발생했다. 같은 시기에 Baekeland는 페놀과 포름알데히드 사이의 반응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독일의 화학자 Carl Heinrich Meyer(칼 하인리히 마이어)는 페놀과 포름알데히드 사이의 산(酸) 촉매 반응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 활용은 래커와 접착제에 국한되었다.

Adolf Luft(아돌프 루프트)라는 오스트리아 화학자 역시 같은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Luft가 얻은 컴파운드는 장뇌를 용매로 사용했으며, 매우 취성이 높았다. 영국의 전기 엔지니어 James Swinburne(제임스 스윈번)은 이 문제점을 바로잡아줄 용매를 찾기 위해 3년 동안 노력을 기울였고, 마침내 가성(苛性) 소다를 그 해결책으로 얻었다. 하지만 그는 페놀릭을 탄생시킨 역사적 인물로 기억되기에는 너무 늦게 영국 특허청에 도착했다. Baekeland가 그보다 하루 앞서 특허를 신청했던 것이다. 

비록 서로 경쟁자이고 적대적이 될 수도 있었지만, Swinburne이 미국에 공장을 설립했을 때 Baekeland가 특허 소송으로 위협한 뒤에는 Baekeland와 Swinburne은 함께 일하게 됐다. 실제로 Baekeland는 특허 소송 위협, 제1차 세계대전 중 Swinburne 및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특허 사용 허락, 그리고 종국에 자신의 특허가 만료되는 1920년대 후반에는 경쟁자들의 회사를 사들이는 방법으로 결합해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Baekeland와 Swinburne이 페놀릭 제조공정을 위해 당시 취한 경로는 응축 중합 반응(condensation polymerization reaction) 제어의 어려움을 반영하고 있다. 대개 응축 중합은 얻고자 하는 반응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제거하거나 억제해야 하는 원치 않는 부산물을 만들어낸다. 이 화학적 반응의 이 같은 측면을 조절해야 하는 문제는 독일 화학자 Adolf von Baeyer(아돌프 폰 바이어)가 극적으로 보여준 바 있다.

Baeyer는 남색 염료 인디고(indigo)를 합성한 업적으로 주로 기억되는 인물로, 1905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지난 회 칼럼에서 언급된 저명한 화학자로 그의 조수가 Baekeland의 박사과정을 지도한 바 있는 August Kekule(아우구스트 케쿨레)의 제자이기도 했다.

Baeyer는 1872년 페놀과 포름알데히드 사이의 화학반응을 최초로 연구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이 격렬한 화학반응의 결과로 수지질의 타르를 닮은 고형물질이 생성되지만, 그 조성을 분석할 수 없었던 Baeyer는 이를 무시해 버렸다. 하지만 페놀릭의 성형성은 플라스틱 디자인이라는 분야를 낳았다.

그로부터 25년 후 이루어진 바이에른의 화학자 Adolf Spitteler(아돌프 슈피텔러)에 의한 또 하나의 우연한 발견이 아니었더라면 포름알데히드 기반 폴리머 개발의 길은 거기서 끝났을 수 있다. Spitteler의 실험실에 살고 있던 고양이가 포름알데히드 수용액이 담긴 병을 넘어뜨려 그 내용물이 고양이 우유 접시에 엎질러졌다. Spitteler는 우유가 빠르게 응고되어 셀룰로이드와 유사한 특성을 가진 단단한 화합물을 형성하는 것을 관찰했다.

이 물질을 만든 화학반응은 카제인으로 알려진 우유 의 단백질 혼합물이 포름알데히드에 의해 교차결합이 이루어져 생긴 것이다. 이 폴리머는 카제인으로 알려지게 됐다. 사실 포름알데히드가 카제인을 물에 녹지 않도록 만든다는 것은 그보다 4년 앞선 1893년 프랑스 화학자 Alfred Trillat(알프레드 트리야)가 발견했다. 그러나 역사는 이를 Spitteler와 화학자가 아니었던 그의 협력자 Wilhelm Krische(빌헬름 크리쉐)의 공로로 기억하고 있다. 

Krische는 세척가능한 흰색 칠판을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재료를 찾고 있었다. 이미 그는 카제인을 사용하려 시도했지만, 처음은 괜찮았으나, 화이트보드를 물로 깨끗하게 닦아내면 카제인이 바로 물러졌다. 교차결합된 물질이 이 문제를 해결해주었고, 시장이 매우 컸기 때문에 Spitteler와 Krische는 카제인 및 관련 제품을 제조하는 회사를 차렸다.

Trillat도 한 프랑스 회사에 자신의 연구에서 얻은 제품을 제조하도록 설득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없었다. 하지만 Spitteler와 Krische의 독일 회사가 성공하면서, 카제인을 손쉽게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 결합되면서 그에 경쟁하는 프랑스 회사도 뒤늦게 서둘러 세워졌다.

상용 제품에는 Galalith(갈라리트: 그리스어로 “유석(乳石): milk stone”)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소재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전시되었으며, 1906년 특허를 획득했다. 독일과 프랑스 기업들 사이에 권리를 두고 소송을 진행했다는 역사적 정보는 없다. 양쪽 모두 주로 당시 성장하고 있던 패션산업 분야에서 단추, 버클, 주얼리 등의 수요 충족을 위해 이 소재를 생산했지만, 카제인은 빗과 칼 손잡이 등 셀룰로이드가 쓰이던 여러 가지 제품 쪽으로도 진출했다. 카제인은 페놀릭의 출현 전까지는 전기 절연체 가공에도 사용됐다.

이 모든 성공, 그리고 10년 이상 페놀릭에 앞섰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카제인은 여전히 고무나 셀룰로이드와 같은 전통에 서 있었다. 즉, 천연 생성된 물질을 변성한 것이지, 진정한 의미의 합성제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알파 카제인, 베타 카제인 및 카파 카제인으로 구성된 단백질은 이미 20,000g/mole대의 분자량을 가진 폴리머이기 때문에 페놀보다 훨씬 생산하기 쉬웠다. 페놀의 분자량은 94g/mole에 불과했으며, 교차결합에 앞서 프리폴리머(prepolymer)로 형성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GE 플라스틱이 만든 최초의 제품은 폴리카보네이트가 아니라 페놀릭이다.

 

여기에 덧붙여, 15년 이상 플라스틱 업계에서 일해 본 이들이라면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사가 플라스틱 소재 사업부문을 운영하던 때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GE 플라스틱의 역사에 대해 물으면, 필자같이 업계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도 1950년대 중반 폴리카보네이트(PC)로 시작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폴리카보네이트 개발에 얽힌 이야기는 1990년대 미국 텔레비전의 일요일 아침뉴스에 많이 방영되던 광고에 나왔었다. 한밤중에 실험실 안을 살금살금 걷던 고양이가 병용기를 넘어뜨렸는데, 다음 날 아침 아마도 DanFox(댄 폭스)를 그렸을 과학자가 그 자리에 만들어진 투명한 덩어리 형태의 물질을 발견하고 끓는 물에 담그고, 불꽃에 넣고, 망치질을 가해 보았으나, 이 물질에는 전혀 손상이 가지 않았다는 광고다.

폴리카보네이트도 우연히 발견된 물질 가운데 하나지만, 여기서 고양이의 역할은 실제로는 없었다. GE의 영리한 마케팅 담당자가 Spitteler의 고양이 이야기를 상업적으로 빌려와 활용한 것이다. 그러나 GE 플라스틱이 만든 최초의 제품은 폴리카보네이트가 아니라 페놀릭이다. GE의 핵심역량은 전기산업 분야에 있었고, 이는 페놀릭이 처음 성공을 거둔 분야였다. GE는 Baekeland의 특허가 만료된 뒤인 1920년대 후반 페놀릭 화합물 분야에 진출해 1980년대 초까지 Genal이라는 상품명 소재로 판매했다.

카제인-포름알데히드 화합물의 성공은 Baekeland가 페놀릭으로 새로운 기원을 열기에 앞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공으로 인해 Baeyer의 초기 실험에 대한 관심이 재점화됐다. 그리고 여러 화학자들이 동시에 이 새로운 화학물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Baekeland는 이 물질 생산에 수반되는 응축반응에서 생성되는 부산물로 상당한 폭발력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연구했다.

이전까지 실험자들은 온도를 낮추어 반응 속도를 늦춰 제어하려 했고, Baekeland도 한동안은 같은 전략을 따랐다. 하지만 그의 신기술은 그가 정반대의 접근방식을 시도했다. 즉, 온도를 올리고, 그 결과로 나온 더 빨라진 반응을 지난 6월호에서 언급한 베이크라이저(Bakelizer) 가압 용기 안에서 제어한 것이다.

페놀릭 중합화의 복잡성은 Baekeland가 라이센스를 부여해 돈을 벌기보다는 직접 생산하는 사업에 뛰어들기로 하는 결정을 내리는 원인이 된다. 이 과정은 화학적 지식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제조업체에게는 너무 복잡했다. 가압 장비 베이크라이저는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의 검사를 도저히 통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장비에는 전력 공급이 필요한 교반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초기 전력망은 Baekeland가 연구하던 지역에는 아직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증기엔진을 구해 실험실 구석에 설치된 석탄 보일러를 사용해 엔진에 증기를 공급했다. 이 증기는 파이프를 통해 수지를 제조하던 차고로 보내졌다. 1909년 3월, 화재로 이 차고 대부분을 태워버렸고, 이에 Baekeland는 커다란 포름알데히드 제조업체가 있던 뉴저지 주 퍼스 암보이의 화학공장으로 이전하게 된다.

최초의 완전 합성 폴리머는 전기 절연체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후 30년에 걸쳐 가전제품, 사무장비, 통신, 자동차, 항공기 및 무기뿐 아니라 욕실비품 및 펜통 등 잡다한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장으로 영향력을 확대해갔다.

페놀릭의 성형성은 플라스틱 디자인이라는 분야를 낳았다. 그리고 이는 우레아와 멜라닌을 포함한 포름알데히드와의 교차결합에 기반한 다른 화학물질을 낳았다. 이 소재들은 착색이 더 용이했고, 절연물질이 오랜 시간이 지나면 발생할 수 있는 전류의 트래킹(tracking)에 대한 내성도 더 우수했다.

최초의 합성 폴리머는 열경화성 수지로 수십 년 동안 플라스틱산업을 지배했다. 이는 오늘날 플라스틱산업의 지형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열가소성플라스틱이 이미 등장하고 있었고, 1930년대부터 시작해 이로 인한 심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다음 회에서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살펴보기로 하다. 

kplastic199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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